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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칼럼_성공하는 기업의 비결] 후지필름의 도전, 불가능의 장막을 걷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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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기 불황이 장기간 이어지며 기업을 둘러싼 생존 환경이 날로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에나 ‘탁월한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해 온 기업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외부 저널리스트의 의견을 전해 드립니다. 첫 번째는 후지필름(Fuji Film)의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글 김영훈 | 중앙일보 디지털제작실장

“에볼라 임상시험에서 아비간(AVIGAN)의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

2015년 2월 5일 프랑스 국립 보건의료연구소는 이 같이 발표했다. ‘흑사병’ 공포를 일으켰던 에볼라가 치료 가능한 질병이 된 셈이다. 아비간은 부작용이 적고, 대량생산까지 가능한 약이다.

이 약을 만드는 곳은 일본의 후지필름이다. 아날로그 카메라의 필름을 만들던 그 회사다. ‘필름 회사가 어떻게 에볼라 치료제를 만들까?’. 이 의문을 푸는 과정은 곧 후지필름이 걸어온 도전의 역사를 짚어가는 일이다.

편집자의 여기서 잠깐, ‘아비간(AVIGAN)’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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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VIGAN Tablet 200mg (출처: FUJIFILM HOLDINGS CORP/AP)

아비간의 정확한 명칭은 ‘AVIGAN Tablet 200mg’로 바이러스 유전자의 복제를 억제해 항 바이러스 효과를 내는 약입니다. 사실 아비간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아닌 조류 인플루엔자 A (H5N1 과 H7N9)에 대한 치료효과를 인정받은 약인데요. 2014년 9월,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프랑스 간호사에게 아비간을 투여한 후 치료 효과를 확인해 큰 화제가 되었답니다.

‘탈(脫) 필름’을 선언한 필름 회사,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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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Flickr Clyde Robinson님

후지필름은 일본 코닥, 독일 아그파와 함께 필름 시장의 3대 축이었다. 물론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기 전인 1990년대까지의 일이다. 2000년 초반 3사는 모두 고민에 빠졌다.

코닥은 1976년 디지털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디지털카메라를 팔기보다 아날로그 필름 시장을 지키는데 열중했다. 새로운 도전에 주저한 결과는 참담했다. 코닥은 ‘코닥이 되다(Being Kodaked)’라는 비아냥까지 받는 신세가 됐다. 이 말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다 실패했다는 의미로 쓰인다. 독일 아그파 필름도 굼뜬 변화로 2005년 파산했다.

그러나 후지필름은 다른 길을 갔다. 2003년 취임한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 후지필름 회장은 이듬해 ‘탈(脫) 필름’을 선언했다. 도전에 앞서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분명히 한 것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고모리 회장은 “도요타에서 자동차를 없애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언급했다. 이 결정에는 실무진의 정확하고 과감 없는 시장분석이 바탕이 됐다. 후지필름 실무진은 필름 시장의 몰락을 예측하는 보고서를 경영진에 전달했다. 필름 회사에서 커왔고, 필름 사업이 유지돼야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기존 임원이 반길 리 없는 보고서였다. 그러나 가감 없는 보고서는 고모리 회장 등 최고 경영진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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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지필름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 (출처: worldofphoto.com)

‘탈 필름’을 선언한 후 혹독한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임직원 1만 5000명 중 3분의 1이 회사를 떠났다. 고모리 회장은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모두 직장을 잃는 시대가 온다”라고 설득했다. 그렇다고 그저 세상의 변화를 쫓지도 않았다. 이미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진출하는 방법만 찾아선 답이 없다는 점도 인식했다.

대신 후지필름은 “우리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느냐”를 고민했다. 해답은 화학합성 기술에 있었다. 필름을 만들면서 축적된 화학합성 물질 20만점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가 후지필름에는 있었다. 얇은 막을 균질하게 여러 겹 쌓아 올려야 하는 필름 제조 기술의 장점도 있었다. 필름을 만들면서 알게 된 영상 기술도 있었다.

치열한 자기 진단, 과감한 실행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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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업 다각화를 통해 변화를 모색한 후지필름 (사진 출처: Fuji Film Global)

이 기술은 세 가지 분야의 도전으로 이어졌다.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화장품, 의료였다. 필름 기술을 손쉽게 변주해 활용할 수 있었던 후지필름의 LCD 패널용 편광판은 한때 시장의 80%를 점유할 정도로 성장했다. 얇으면서도 균일한 표면을 유지해야 하는 필름 기술은 LCD 패널을 덮는 투명 필름을 만드는데 바로 응용했다. 패널 사업은 급격한 필름 매출을 감소를 보완하며, 후지필름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연구개발(R&D) 비용을 만드는 역할까지 했다. 후지필름은 5,000명을 구조조정하면서도 R&D 투자만은 매출액의 8% 이상으로 유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LCD 수요가 줄면서 지속적으로 이어진 R&D 투자는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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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단 과학기술과 화장품의 만남 ‘아스타리프트(ASTALIFT)’ (출처: ASTALIFT)

2007년 출시해 큰 인기를 얻은 화장품 ‘아스타리프트’가 대표적이다. 필름 재료인 단백질(콜라겐)과 필름의 변색을 막는 화합물을 활용해 노화 방지 화장품을 만든 것이다. 필름의 변색과 피부 노화를 막는 것은 유해 활성산소와 접촉을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고, 후지필름이 보유한 황산화 물질 기술은 화장품에서도 먹혔다. 게다가 필름에서 사용했던 나노입자 기술은 기능성 물질이 피부 깊숙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가공하는 데도 큰 몫을 했다.

에볼라 치료제인 아비간 역시 제약 기술과 후지필름의 화학합성 기술이 접목된 결과다. 후지필름의 영상 기술은 내시경, 초음파 진단기 등 의료기기로 진화됐다. 현재 후지필름 매출에서 필름이 차지하는 비중은 1%미만으로 줄었고, 의료 · 전자소재 · 화장품 매출은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연구개발과 함께 기업 인수·합병(M&A)도 후지필름의 도전과 출발에 톡톡히 한몫을 했다. R&D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면, M&A는 시간을 줄이는 일이었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고모리 회장은 취임 후 10여 년간 40여 개 회사를 인수했다. M&A의 철학도 분명했다. 고모리 회장은 “본업과 무관한 분야는 절대 진출하지 않는다. 기존 기술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확장을 시도한다.”라고 말했다.

코닥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 후지필름의 성공은 이렇게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안목에서부터 시작됐다. 바뀐 시장 환경에 당황한 채 남들을 따라 가는 대신 치열한 자기진단과 과감한 실행력을 통해 10여 년을 달려온 결과다. 고모리 회장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무렵 이런 말을 했다. “최고의 경영자(CEO)는 인생 마지막 성적표다. 마지막 성적표가 꼴찌면 내 인생도 꼴찌로 끝난다. 어디 한 번 해보자.”

성적표는 비단 CEO만의 것은 아니다. 벼랑 끝에 서서 새로운 도전과 변화의 과정에 함께 한 것. 그래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 했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후지필름 임직원 모두가 받아 든 자랑스러운 성적표다.


시장의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 과감히 변화의 길을 택한 후지필름. 이러한 후지필름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시장의 거센 변화 속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네요. 자, <성장하는 기업의 비결> 첫 번째 시간 어떠셨나요? 다음에도 흥미로운 사례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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